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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치품

영조 때 사치품 비단 밀수자 사형에 처형되기도
한여름 최고의 사치품 얼음 먹는 특권자는 다르지만…
2023. 09.15(금) 09:44확대축소
조선 영조 22년(1746) 이명식이라는 관리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늬 있는 비단을 사가지고 왔다. 소문을 들은 평안도사(종 5품, 도지사를 돕는 직책) 임집이 이명직의 집을 수색해 비단을 압수해 불태웠다. 그리고 이명직을 옥에 가두고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이 일은 곧 ‘사건’이 되어 조정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2월 15일 사건을 보고받은 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먼저 영의정 조현명은 말했다. “금지된 물품을 몰래 사올 경우 법률에서는 목을 베어 내걸게 했으므로 정해진 법률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 제정한 이 금지령은 성덕을 빛낼 제도로서, 다만 나라 안에서 시행해 굳어진 풍속을 만회할 기회일 뿐만 아니라, 이미 온 세상에 알려져 있는 제도입니다. 대게 무늬 있는 비단은 연경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소주 항주에서 짜다가 우리에게 파는 것입니다. 연경의 상인 정세태는 새로운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소문을 듣고서 깜짝 놀라며 당장 강남에 연락해 직조를 중지시키고 우리 사람들에게 ‘당신네 국왕으로서는 진실로 성덕의 일이지만 우리들은 이제 살 길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좋은 소문의 영향은 멀리 미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명직을 죽이지 않는다면 진실로 법령이 흐트러져서 먼곳 사람들의 웃음을 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병조판서 원경하는 즉각적인 사형 결정에 반대했다. “사람의 목숨은 아주 소중하므로 사형을 말할 때는 급하게 결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법률을 억지로 끌어대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정해진 법률이 없는데도 서둘러 죽인다면 이는 백성을 속이는 것이요, 그의 범행이 아무리 공무가 아니라 하더라도 죽을죄는 아닙니다. 지금부터 법조문을 분명히 세우고 나서 시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른 여러 신하들도 병조판서의 말에 동의했다. 사형에 처해야 할 죄이긴 하지만, 무늬 있는 비단을 들여오면 사형에 처한다는 것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왕도 이 의견을 받아들였다. 결국 이명직은 서울로 압송해 조사한 뒤 처벌하기로 했다. 그리고 평안도사 임집은 마땅히 사형을 요청해야 하는데도 그냥 옥에 가두기만 했다는 죄로 파면되었다. 보고서에 연대 서명한 의주 부윤 권일형과 그의 상관인 평안감사 이기진도 직무를 유기한 만큼 조사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호조판서 김시형은 무늬 있는 비단을 들여오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 자체에 조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일본의 사절단이 오면 무늬 있는 비단을 하사했고 그런 조약도 있다는 것이다. 곧 일본에서 통신사가 올 텐데 왜인은 성미가 편협해 더 좋은 비단을 주어도 약조를 구실삼아 말썽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의정 조현명도 이것은 외교 문제이니 일본에 줄무늬 있는 비단을 구입하고자 나섰다. 그러나 왕은 단호하게 말한다. “처음에 무늬 있는 비단을 들여오는 것을 금지한 것은 말하건대 사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이하고 아름다운 물건이라서 사다가 이웃 나라의 사치를 돕는 것이 옳은가? 왜인의 상선이 남경을 오간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의 금지령을 들었을 듯도 하고, 또 실제로 우리에게 없기때문에 다른 물건으로 대신 주는 데는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저들이 어찌 까다롭게만 나오겠는가? 지금 이것을 이유로 금지를 풀고 나서 이 사실을 역사책에 쓴다면, 나는 후세의 비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의 웃음을 사지 않을까 두렵다.”
지금이야 수입 자유화의 물결 속에 2천만 원이 넘는 밍크코트가 백화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우리의 현실과 사뭇 대조된다.
허나 그 시대는 달라 왕비의 옷도 화제였는데, 1993년 서울시는 흥선대원군의 개인 집이였던 운헌궁을 보수·정비하면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혼례 때 입었던 면복과 적의·흥선대원군의 조복과 그의 부인의 원삼 따위 4벌의 옷을 제작했다. 면복이란 흔히 곤룡포라 부르는 왕의 정복이며, 적의란 붉은 비단옷에 꿩을 수놓은 왕비의 정복을 일컫는다. 그리고 조복이란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나갈 때 입는 일종의 근무복이며, 원삼이란 양반집 부녀의 예복이다.
조선왕조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제작한 이 옷들의 제작비용은 모두 9천8백만 원, 마진이 붙지 않은 것이니 원가만 1억 원 가까이 든 셈이다. 그 가운데도 명성황후의 옷값만 5천여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의상 제작에는 직조·수·금박·보석 세공의 기술자 2백여 명이 참가하여 제작기간은 3개월이 걸렸다. 이 가운데서도 명성황후의 옷에 가장 많은 공이 들었다고 한다. 최고급 비단에 손으로 일일이 수를 놓고 금박을 새겼는데, 한 세트의 옷이 모두 23종의 옷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1420년 4월 26일의 「세종실록」엔 왕이 그의 친형인 양녕대군에게 얼음을 내려주되, 날마다 한 덩이씩 음력 5월에서 7월까지 내려주고, 그 뒤로는 그치게 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웬 얼음인가? 인공으로 얼음을 만들 수 없었던 그 무렵에는 입춘 전 한강의 얼음이 4~5척 이상 두껍게 얼면 이를 떼어내어 얼음 창고 속에 보관했다가 봄과 여름에 사용했다.
동빙고는 궁중에서 제사 지낼 때 쓰일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이고, 서빙고는 궁중과 개인의 일반적인 용도를 위한 것이었다. 신라시대의 경주 석빙고가 말해주듯이 겨울에 얼음을 보관해 여름에 사용한 역사는 길다. 그러나 전기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여름의 얼음은 일반 백성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귀한 것이었다. 벼슬아치들도 2품 이상의 고관대작이 되어야 복날에 임금으로부터 얼음 한 덩어리씩을 선사 받는 터였다. 그래서 검약을 강조하던 헌종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름철에 얼음이 없으니 이제부터 6~7월에 날전복과 익힌 전복을 상납하는 것은 영구히 멈추라.”
헌종과는 달리 연산군은 최고의 사치품인 얼음을 가장 사치스럽게 사용한 왕이었다. 연산군이 왕으로 즉위한 첫해에 그는 관찰사에게 지시했다. 약에 쓸 곰은 민폐를 끼치지 말고 잡아서 큰 것은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쪼개어 가닥을 만들고, 작은놈은 전체를 얼음에 채우고 아울러 그 가죽은 이어서 갖다 바쳐라. 물론 그뿐이 아니었다. 한겨울엔 산 모양으로 얼음을 조각하도록 해놓고 이를 감상하는가 하면, 한여름 더위 속에 대비의 생일잔치를 치르면서 무게가 각기 천근이나 나가는 놋쟁반을 연회장 사면에 설치하고 그 위에 얼음을 놓아두기도 했다. 천연 에어컨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얼음 이용법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연산은 왕으로서는 드물게 「연산군일기」에 얼음을 소재로 한 시까지 한 수 남겼다. 승지들이 포도 한 송이를 따서 얼음 넣은 쟁반에 담아 왕에게 바치니, 임금이 몸소 시를 지었다. “얼음 채운 파란 알이 달고 시원해/옛 그대로인 성심에 절로 기쁘네/몹시 취한 주독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병든 위, 상한 간도 고쳐주겠네” 1504년 한여름인 7월 25일 경희루에서였다.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는 오늘날, 얼음은 사시사철 구경할 정도로 흔한 물건이 되었다. 그러나 얼음이 흔한 대신 더이상 조선시대의 얼음 맛을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사치까지도 말이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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