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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문 이선제의 생애와 경륜

공양왕2년 광주 부이장동 지금의 광주 남구 이장동에서 태어남
태종실록과 고려사 편찬에 두루 참여한 역사학에 밝은 학자
재정·국방 등의 사무에 밝고 식견이 뛰어난 경세적 학자 관료
2023. 07.05(수) 14:28확대축소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 소장 고려사 137권 19책.
이선제는 1490년(공양왕2) 광주 부이장동 지금의 광주시 남구 이장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가부(家父), 호는 필문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고조 이순백(李珣白), 증조 이기(李奇), 조부 이홍길(李弘吉)이 고려 문과에 들었고, 부친 이일영(李日英)은 조선 태종 치세 문과에 급제하여 장흥부사를 지냈다. 일찍이 양촌 권근(1352~1409)의 아우로써 포은 정몽주(1337~1392)를 섬겼던 매헌 권우(1363~1392)에게 학문을 배웠다. 매헌은 성리학과 ‘주역’에 밝았던 학자관료였다. 1411년(태종11) 진사, 1419년(세종1) 증광 문과에 급제한 이선제는 예문관 검열과 대교를 거쳐 1420년(세종2) 국과 학술과 정책을 자문하는 집현전이 설치되자 수찬·부교리·교리·직제학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하였다.
당시 호남 출신의 학술자료로 신장(1382~1433)과 그의 아들 신숙주(1417~1475), ‘용비어천가’를 지은이로 알려진 안지(安止, 1384~1464) 등이 집현전 학사로 유명하지만, 이선제 또한 괄목할 만하였다. 이선제는 <태조실록> 편수사 <고려사> 개찬에 참여하면서 역사학 방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고려사 개찬사업은 정도전(1342~1398)과 정총(1358~1397)이 중심이 되어 1395년(태조4) 마감한 고려국사가 사실의 생략과 부연이 많고 편찬자의 주관에 따라 왜곡이 적지 않았음을 이유로 세종이 즉위한 해(1418)부터 각별하게 추진하였던 역점과제 중의 하나였다. 1423년(세종5) 고려사 개찬에 참여한 학자들이 관직이나 명호의 용어 문제를 정리하면서 고려때 사용했던 종(宗)·태자(太子)·태후(太后) 등의 황제국 용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정도전의 <고려국사>에서와 같이 제후국의 법도에 맞춰 변경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숙의 하였을 때였다. 당시 사업 책임자 중에서 유관(1346~1433)은 주자의 강목체에 충실할 것을 제안하고 또 다른 책임자였던 변계량(1369~1430)은 정도전이 했던 대로 제후국에 맞게 용어를 변경하자고 주장하였는데, 이선제 등은 “태자·태부(太傅) 등의 칭호는 당시 관제요, 제(制)·칙(勅)·조(詔)·사(赦)도 당시의 호칭하던 바이니 비록 명분을 바로잡는다고는 말하지만, <춘추>에 교제와 대우를 같이 전하여(그 후세에) 감계가 되게 하였으니, 어찌 이를 고쳐가며 그 실상을 인멸되게 하겠습니까?” 하며, 당시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세종 또한 사실을 그대로 쓴다는 이질직서의 원칙에 동의하면서 관제나 시호 모두 변경하지 말고 고려실록에 의거하여 기재하라고 명령하였다.
이후에도 세종은 이선제를 거듭 신뢰하였다. 1439년(세종21) 1월 이선제를 특별히 이르기를 “그대는 지금 관직이 춘추관을 겸인하여 <고려사>를 편수하는데 참여하고 있는데, (고려왕실)왕씨를 용의 자손이라 함은 매우 괴상한 것이다. 예전에 충성왕이 이 원에 갔을 적에 원의 학사가 그 연유를 물었으니 비록 그 말이 황당하지만 후세에 불가불 전하여야 하겠으니, 사책(史冊)에 기재는 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선제가 호조참판이란 중책을 맡고 있었을 때에도 고려사 개찬을 관장하도록 조치하였다.
한편 이선제는 정책 자문에도 적극적이었고 권위있는 고위 관료 앞에서도 좀처럼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1428년(세종10) 문과 복시의 1차 시험인 초장의 시험과목을 강경 (시험관 앞에서 사서오경 중 지정된 부분을 읽고 시험관의 질문에 대답하는 구술시험)과 제술(시나 글을 짓는 능력을 보는 논술시험) 중 어느 것으로 할지를 두고 조조의 의견이 분분할 때였다. 당시 판부사로 대제학의 위치에 있던 변계량이 ‘강경은 사사로운 정이 개입할 우려가 있으니 제술로 하여야 한다’고 거듭 제기하였으나, 이선제는 끝까지 제술을 주장하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변계량이 ‘춘추관 사람들이 모두 나의(강경을 초장으로 하자는) 의견을 따르는데, 어찌하여 따르지 않느냐’며 따지듯 묻자, 이선제는 “제술을(시험과목으로) 사용하면 한갓 조충전각(문장을 짓는 데에 있어 지나치게 자구의 수식에만 얽매이는 일)의 기술만 익혀 과거에 합격하려 들 것이니, 누가 성리학에 전심하려 하겠습니까?”라 하며 뜻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고, 이에 변계량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442년(세종26) 7월 하순, 세종은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자(훗날 문종)의 대리청정을 위해 세자 보좌기관인 첨사원을 설치하며 집현전 직제학이었던 이선제를 동첨사로 삼았던 것은 학술적 기량과 함께 정무감각을 겸비하였다고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이선제는 형조·병조·예조의 참의와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1447년(세종29) 12월에는 종 2품 가선대부에 올라 두차례나 호조참판을 맡았다. 이선제는 1444년(세종26) 강원도 관찰사 시절 행정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특히 여름철 진상하는 생어육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얼음 저장소가 필요함을 건의하여 강릉과 춘천 두곳에 빙고(氷庫)가 설치되도록 하였으며, 1447년(세종29) 예조참의 때는 자신 업무 소관을 넘어 소금의 전매를 반대하며 선군으로 하여금 소금을구워 백성들에게 쌀과 베로 바꾸어가도록 함으로써 민간은 쉽게 소금을 구하고 관청 또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경세적 실무관료로서의 정책 식견은 문종이 즉위하며 1년 반 남짓 예문관 제학 겸 세자 시강원 빈객, 동지춘추관사로 있으면서도 여전하였다.
1452(문종2) 봄 이선제는 중궁전의 봉공과 일체 사무를 관장하는 왕실기구인 경창부의 수장, 경창부윤으로 옮겼는데, 이때에는 요와 같은 시대의 단군을 기자와 함께 제사 지낼 수 없다며 평양에 단군묘를 복원하고, 단군이 하늘로 올라간 아사달 즉, 구월산의 삼성단을 정비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처럼 이선제는 태종실록과 고려사의 편찬에 두루 참여한 역사학에 밝은 학자였을 뿐 아니라 재정·국방 등의 사무에 밝고 식견이 뛰어난 경세적 학자 관료였다. 1447년(세종 29) 대마도주의 집에 불이 나자 위문품을 내리는 국왕의 뜻을 전하는 서신을 지어 보냈으며, 1448년(세종30) 겨울에는 정조사로 북경을 다녀오고, 단종 즉위년(1452) 문종 승하로 조문 왔던 명나라 사신을 배웅하는 반송사의 직임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이선제는 세종이 왕실의 비보사찰이던 홍찰사의 사리각이 완공되자 그 취지를 밝히고 경축하는 경찰소문을 맡겼을 만큼 문장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훗날 일어난 기축옥사(1589)로 집안의 문헌들이 없어진 탓에 그의 작품세계의 전모를 살피기는 어렵다. 다만 <동문선(1478)>에 칠언고시 ‘격옹도’와 ‘춘일소양행’,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에 청음정 제영이 전한다. ‘격옹도’는 어린시절 사마광(1019~1086)이 물이 가득한 독에 빠진 어린애를 독을 깨부숴 구해냈다는 고서를 옮긴 그림을 보고 지은 것이다. 그 누가 독 깨뜨리는 그림을 고려서 그대 서재의 자리 옆에 걸었을까? 생략.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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