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척 출신 기녀 자운선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아비의 권력을 믿고 온갖 만행
이지영은 자신의 기녀 자운선에게 세금을 내도록 했다
| 2022. 11.22(화) 14:45 |   |
|
얼마 후 감찰사 합문지후 최신윤이 어명을 띠고 삭주로 내려갔다. 응당 분도장군이 마중을 나와야 한다. “분도장군은 어디 갔는데 마중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최신윤이 불쾌해 하며 말했다. 얼마 후에 이지영이 나타났다. “미안하오” 한 마디 뿐이었다. “나는 어명을 띠고 먼 길을 온 사람이오. 그대가 영접치 않으니 어명을 거역하는 결과가 아니오” 따지는 말이었다. 이지영은 뒤가 튼튼해서인지 역시 굽실거리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최신윤이 공관에 유숙하게 되었다. 이지영은 평상시의 옷을 그대로 입고 대접했다. “관복은 어디 두었소?” “밤에도 관복을 입소” 퉁명스러운 이지영의 대답이었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이지영이 돌연 최신윤의 옷을 잡고 낚아챘다. 최신윤은 정신없이 나가 떨어졌다. 그대로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이지영이 지쳐 쉴 때 최신윤은 도망쳤다. 이지영은 분하여 도망친 최신윤의 옷을 가져다 불태우고 최신윤이 데리고 온 나장 한 사람을 분풀이로 죽였다.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이지영은 이때 분도장군으로 홍화진과 운중도를 시찰하게 되었다. 이곳은 국경의 변방지대로서 양수척이 많이 살고 있었다. 원래 양수척은 고려 태조가 전날 후백제를 정복할 때 최후까지 반항하던 백제의 진중이다. 그들은 고려 왕도에 대해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버텨나갔던, 그러므로 관직도 가지지 못하고 살 수 있는 곳을 따라 유랑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국 압록강 중류지대에 물과 버드나무가 무성한 곳을 찾아 정착했다. 여기서 그들은 고리버들을 심어 고리짝을 짜서 팔며 호구지책으로 겨우 생활해 나갔다. 이와 같이 무적자였으므로 국가에 세금도 바치지 않았다. 이들은 고리백정이라 했으며 고려의 기생도 이러한 고리백정의 집에서 나와 노래와 춤으로 생을 영위해 나갔다. 자운선이라는 기녀도 고리백정 출신으로 이지영이 삭주 분도장군으로 갔을 때 데려온 기생이었다.
고리백정들은 국가에 세금을 바치지 않았으므로 이지영은 고리백정촌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너희는 국가에 세납을 하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기녀 자운선에게 세금을 내도록 해야겠다”하며 대략 이때부터 그들의 부역을 받아 자운선이 마음대로 쓰도록 했다. 이후 자운선은 고리백정을 괴롭히며 많은 세금을 거두어 갔다. 말하자면 이지영은 기녀도 얻고 동시에 백정들의 세금까지 거두어 먹게 된 것이다. 실지로 권세에 맛을 들인 이지영은 애기 자운선을 얻은 후 항상 그녀와 행동을 같이했다.
예성강에서 명승지로 알려진 벽란도는 송나라 상인이 자주 드나들어 국제무역항으로 번화하고 풍성했다. 이곳에서는 송에서 들어오는 술, 향내 진동하는 차 등속이 매일같이 팔려갔다. 그중에도 송의 황색비단은 고려 여성들의 눈을 매혹했다.
이지영은 벽란도의 예성강을 질러 다리를 놓을 생각을 하고 항상 자기의 원찰인 백란도의 보달원에 나가 놀았다. 이럴때면 자기의 허장성세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예성강의 물이 불어 강 언덕을 휩쓸며 물이 굽이쳐 내려갔다. 이러한 시기를 이용하여 이지영은 자운선을 데리고 보달원으로 구경을 나갔다. 보달원에서는 음식을 차려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지영은 기분이 좋아 그 근처에 있는 여러 장군을 불렀다. 그의 명령인 만큼 송도시중에 있던 장군들은 일제히 보달원으로 모여들었다. 보달원은 송도에서 불과 3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했지만 한번 명령만 내리면 모여드는 것이 당시 장군들의 기풍이었다.
이의민은 당대의 권력가이고 그의 아들은 아비의 세력을 등에 업고 행세하는 자였다. 이 때문에 그의 부름이 있다면 천리라도 갈 사람들이었다. 좌중에 여러 사람이 모였으니 주인공이 되는 이지영은 기분이 좋았다. “장군 보달원이야 말로 천하의 일경이올시다” “부디 오래도록 이 절을 잘 수호하시어 큰 복을 누리시오” ＂현세의 영광을 미래에도 누리도록 하시오“ 모두 아첨하는 인사의 말이었다. ”여러 장군이 모였으니 준비한 음식이나마 충분히 맛보도록 하시오“ ”장군의 성덕을 어찌 잊겠소이까“ 모두들 극구 칭찬하며 보달원의 음식을 맛보았다.
연회가 익어갈수록 진귀한 음식은 더욱 많이 나왔다. 국제항구가 가까우니 송나라의 음식이 많았다. 승려들은 소찬을 즐긴다하나 권력자의 대연인 만큼 육류가 많이 놓였고 예성강의 물고기도 상에 올랐다.
장군은 감격한 듯이 술을 마시며 한때를 즐겼다. “풍악을 울려라. 술에는 풍악이 있어야 하느니라” 주인의 말이 떨어지자 풍악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이와 동시에 기녀들이 주연석으로 올라왔다. 기녀들은 모두 긴 옷을 입고 음악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꽃 속에서 노는 나비같이 한들거리며 감미로운 선율에 맞추어 넘어간다. 술이 돌아갈수록 무기의 춤은 더욱 화사해졌다. 그중에도 자운선의 춤을 출 때 그녀의 미모에 모두 입이 벌어졌다. “하늘에 선녀가 있다더니 바로 저 자운선을 말하는 게로근” “함부로 말하면 큰일나네. 자운선이야말로 바로 주인 이지영의 애기일세.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게” “저런 아이는 대관절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저절로 굴러왔다네” “아니지 하늘에서 내려왔지” 제각기 칭찬이 자자했다.
장군 가운데는 최충원도 있었다. 그는 아직 말석에 앉는 하급장군이었다. 그는 자운선의 춤을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이 사람, 무엇을 그렇게 보고 있나? 술이나 들게” 옆에서 말을 건넸다. “선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군. 선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있었어” “예성강 물귀신의 딸이라네. 그래서 저렇게 미끈하다네” 마치 물속에어 뛰어노는 은어같이 보여 하는 말이었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왔다가 저런 계집을 품어보아야 사람다운 행세를 하지”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 말게. 주인이 노려보고 있네” “이왕 자랑삼아 내 놓은 기녀인데 손목이라도 한번 만져보아야지” 최중원이 흠모한 나머지 말했다.
거센 무부들은 그동안 여러 번 내란을 겪었으니 본 것은 모두 살벌한 광경뿐이었다. 이제 평화가 돌아오니 부드러운 여성이 그리웠다. 그 중에도 최충원은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자리이지만 그래도 이지영의 자리에 앉아 자운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춤을 추며 자기를 슬금슬금 보는 것 같았다. “최 장군님 술을 드시지요”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였다. 최충원은 깜짝 놀라 쳐다보며 술잔을 내밀었다. 정녕 자운선이 앞에 와서 술을 권하는 것 같다. “어찌 네가 나를 아느냐”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다시 보니 자운선은 바로 건너편 높은 곳 이지영의 옆에 앉아 있었다. 술을 권한 기녀는 아주 못생긴 기녀였다. “장군을 어찌 모르오리까” 그녀는 애교 있는 웃음을 지으며 술을 따랐다. “잘못 보았구나” 혼자 탄식할 때 기녀는 사라져 옆 죄석에서 술을 권하고 있었다. 최충헌의 심정은 오매불망할 지경이었다.
최충헌은 명종 26년(1196) 아우 최충수와 합심하여 이의민과 그의 아들 이지영을 멸망시킨다. 따라서 최충헌은 이지영이 품은 그 아름다운 기녀 자운선을 품게 된다.
이미경 cws2344@hanmail.net 이미경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