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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묘호는 ‘고종태황제’

일본인에게 시해된 민황후도 묘호에 해당되지만
일의 작전명령 ‘여우사냥’에 조선은 국모를 잃고 몸서리친다.
2022. 11.22(화) 14:42확대축소
고종·명성황후 가례 재현 행사.
이집트 사람들은 진짜 이름인 큰 이름과 가짜 이름인 작은 이름 두 개씩 갖고 있는데 작은 이름만 부르고 큰 이름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한다.
버마와의 축구대전을 중계할 때 선수들 이름에 온통 ‘몽’이 들어가 있어 몽-몽 개 짖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것도 ‘몽’이라는 미혼자의 공통이름에 실명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콩고어부들의 공통이름은 ‘무에레’로 밥을 많이 먹는 무에레, 아내가 예쁜 무에레… 하는 식으로 식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본명·실명을 부르지 않기 위해서 아명이 있고 자“(字)가 있으며 불특수의 호가 있다.
임금을 부르는 호칭에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어려서는 이름을 부르고 세상을 떠나면 묘호(종묘에 모시는 이름)나 시호로 부르게 된다. 이를 세종대왕에 적용하면 어릴 때의 이름은 도(陶)이고 묘호는 세종(世宗)이며 시호는 장헌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실록을 ‘세종 장헌대왕실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종임금의 묘호는 왜 ‘고종태황제’인가. 그가 대한제국의 황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성황후’도 묘호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그분이 살아있을 때는 ‘민왕후’나 ‘민비’로 불러도 아무 하자가 없을 것이다.
민왕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더러는 근자에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 마치 해석이 달라진 것처럼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관련된 책들이 동시에 간행되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지만 결과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1895년(고종 23·乙未年)의 여름은 길고 잔인했다. 주한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의 후임으로 새 일본국 전권공사 미우라 고로가 부임해 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미우라 고로는 일본군 예비역 육군 준장에 정3위 훈일등자작의 지위에 있는 강골의 무장이었다. 이 같은 강골의 미우라가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부임하는 데는 일종의 밀계를 도모하자는 음모였다. 첫째는 날로 실추되어가는 일본국의 위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고 둘째는 일본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모종의 음모를 결행하려는 계책의 일환이었다.
일본국 정부는 조선 조정의 정책이 친로(러시아) 성향으로 바뀌는 것을 중전인 민왕후의 입김과 척족인 민씨일문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선 조정의 외교정책을 다시 친일성향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엄하게도 조선국의 국모를 시해하겠다는 실로 엄청난 음모를 꾸민 것이다. 미우라 고로는 온천지방인 아타미의 한 병원에서 신병을 치료하던 중에 일본국 외무성으로부터 조선공사로 취임해 줄 것을 교섭 받는다. 그는 모든 조선정책을 자신에게 맡길 것을 조건으로 승낙했고 그 조건에 민왕후의 시해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 어마어마한 밀계를 일본정부 최고의 조선통이자 전임 조선공사인 이노우에 가오루가 모를 까닭이 없다.
미우라 공사의 작전계획을 실행하게 될 조선 조정의 군부와 궁내부의 고문으로 있는 오카모토 류노스케 또한 작전의 달인이었다. 그는 본시 일본군 포병소좌로 쿠데타를 주도했다가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문무의 신동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감옥에서 사형 집행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동향인 외무대신 무쓰무네미쓰가 폐병환자로 위장하게 하여 석방했다. 물론 조선조정에 밀파해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육군중장 출신의 강골인 미우라 공사가 작전의 신동이라고 불리는 육군소좌 출신의 오카모토라는 걸출한 참모에게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남산에 있는 일본공사관에 틀어박힌 채 불상 앞에서 염불만 외고 있었다, 조선의 고관대작들은 그의 위장전술에 속아서 염불공사로 얕잡아보는 우를 범하게 된다.
8월 16일 조선의 군부대신 안경수가 미우라공사를 찾아와 일본군 교관이 조련한 조선훈련대를 해산하겠다고 통고했다. 미우라 공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훈련대가 해산되면 경복궁의 장악이 불가능하고 또 그것은 민왕후의 시해작전에도 큰 타질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우라 공사는 귀국을 위장하면서 인천에 대기하고 있던 오카모토 류노스케와 그 일당들에게 당장 한양으로 돌아와 ‘여우사냥’에 나설 것을 명했다. 이때 민왕후의 시해에 동원된 일본인 낭인들의 몰골을 히로시마지방 재판소의 예심판사가 작성한 예심결정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일행 30여 명은 용산의 쇼시 기타니의 양점포와 일본경찰서에서 잠시 휴식하고 밤 12시가 지나서 결속을 마치고 공덕리로 향했다.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허리에 칼을 찬 사람도 있었고 몽둥이를 든 자, 짚신을 신은 자, 양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자, 그 해괴한 모양은 초적폭도의 일단과 같았다.
일국의 국모를 시해하려는 무뢰배의 몰골로는 아주 제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공덕리로 떠난 것은 흥선대원군의 가마를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 3시 일본인 낭인들이 경복궁의 담을 뛰어넘는 범궐을 감행했다. 경복궁의 수비대는 대장 홍계훈과 군부대신 안경수의 지휘로 출동한 시위대와 힘을 합쳐 총격전을 벌이며 사투하는 듯 했으나 홍계훈이 일본국 경찰이 손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안경수 마저 도망치자 대원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지는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 일본에 매수된 역적 우범선(우장춘박사 아버지)에 의해 궐 안으로 쳐들어온다. 민왕후의 침전은 건청궁의 곤령합이었다. 미친 듯한 왜인들의 발길이 여기를 놓칠 까닭이 없다. 처음 얼마동안 민왕후는 상궁들에게 섞인 채 방 안에 있었으나 천만다행으로 침입자들은 누가 민왕후 인지를 판별할 수 없었다. 에워싸고 있는 상궁들의 기지로 민왕후는 사력을 다해 달아나려 했으나 옥후루 앞에서 일본인 낭인들에게 발각된다. 무도한 낭인들은 장검을 휘둘러 민왕후를 시해했다. 통한의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향년 44세였다. 이참혹한 현장을 두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미국인 당직 장교 윌리엄 매커다이 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양관을 관리하던 소련인 건축기사 사바틴 이었다.
사바틴은 이때의 참경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군들이 궁녀들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정원으로 내던졌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잔인하고 적나라한 기록은 조선정부 고문으로 있던 다치스카가 본국의 스에마쓰 법제국장에게 타전한 전문이다.
왕비를 끌어내어 두서너 군데를 칼질한 다음 나체로 만들어 국부검사를 하고 석유를 뿌려 불을 지르니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잔인함이라….
어찌 천인이 공노할 만행이 아니랴! 일국의 국모가 일본인 무뢰배들에 무참하게 시해되는 것은 고사하고 시신의 옷을 벗겼으며 가공하게도 국부를 희롱한 다음에 불태움을 스스로 자신들의 문건으로 밝히고 있음에도 당시 히로시마재판소는 증거 불충분이라는 미명하에 조선공사 미우라 고로를 비롯한 모든 폭도들을 무혐의로 석방했다.
역사란 참으로 엄숙하다, 민왕후를 시해한 사건이 있은 지 꼭 100년째가 되는 지난 1995…, 당시에 사용되었던 일본도가 규슈(九州)에서 발견되었다. 검도의 칼집에는 무엄하게도 ‘순식간에 여우를 해치우다’라는 글자까지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 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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