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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득과 정을 나눈 연심

과거에 급제 지방관으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박인득
동료의 모함으로 죽은 첫정의 낭군따라 자결한 연심의 사랑
2022. 08.24(수) 15:25확대축소
마당극 '사또의 생일잔치'.
세종임금(1397~1450)때의 이야기다.
“영호, 자네가 이 고을의 사또인가” “믿기지 않는다는 말인가. 자세한 이야기는 내실로 들어가 하세. 여봐라! 주안상을 차려라” 사또는 박인득의 손을 잡고 동헌 가까운 방으로 인도했다.
박인득은 이것이 꿈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억센 사령들에게 이끌려서 관까지 올 때는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젊은 놈은 편히 방안에 틀어박혀 책 나부랭이나 읽고 노모는 삯일을 하도록 했으니 벌을 받게 될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런데 죽마고우였던 김영호가 이곳의 사또라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난 아직까지 귀신에게 홀린 것 같네” “허어 자네가 이곳 봉산 땅에 산다는 소리를 들었네만 과거 준비를 하느라 찾아보지 못했네. 다행이 운이 좋아 과거에 급제하여 상감께 제수 받은 곳이 바로 봉산군수가 아니겠나? 그래서 자네를 청한 것 일세” “원 사람도 그랬었나. 난 괜히 사또가 부른다기에 가슴이 철렁했네. 정말 반가우이” “그런데 자네 행색이 누추하군. 장가는 들었나” 사또는 박인득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농담조로 물었다. “아니라네…” “내 짐작이 틀림없군 틀림없어”
방문이 열리고 상다리가 휘도록 가득 음식을 차린 주안상이 들어왔다. 그 뒤로 치맛자락이 스치는 간지러운 소리와 힘께 날아갈 듯이 큰절을 하는 여인이 들어왔다. “허허 매홍아 어서오너라” 김 사또는 매홍이라는 여인의 휜 손을 이끌어 박인득 옆에 앉히고서 호탕한 웃음을 웃었다. “으하하 자아 매홍아 한잔 따르려므나. 옳지 그리고 연심이도 손님께 권하거라” “예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연심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나직이 답하고는 섬섬옥수를 들어 술을 따랐다. 그 순간 인득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황홀감을 느꼈다. 강렬한 체취였다. 숫총각인 인득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향취였다. “자 인득이 한 잔 쭈욱 들이키게나. 허허허” 김 사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인득은 술잔을 비웠다. 그 후 인득은 자기가 술을 마시는지 아니면 술이 자신을 마시는지 분간하지도 못하고 대취했다. 단지 옆에 앉은 연심에게서 풍겨오는 황홀한 지분냄새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응” 이렇게 곤히 잠이 들고 말았는데, 밝아온 빛에 막 잠이 깬 인득은 뭔가 달라진 분위기에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이상하다, 이게 웬일일까? 영문을 알 수 없구나” 궁금해 하던 인득은 마침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대는…” “이제 기침하셨습니까” 고운 목소리로 문안을 하는 여인은 다름아닌 연심이었다. “어찌된 일이오. 영문을 알 수가 없소” “호호 사또의 분부이옵니다” “뭐라고 그럼 사또의 분부로 그대가” “예” 인득은 놀랐다. 자기와 함께 잠자리에 든 여인이 바로 천상의 선녀와 같은 연심이라는 말인가.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 연심의 볼은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만취한 인득을 보살피라는 사또의 지엄한 분부가 있어서 자기 집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허 그 친구 짓궂기는…, 자아 연심아 이리 오너라” 사또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인득은 연심의 버들가지 같은 허리를 힘있게 끌어안았다. “얘 연심아 이리 가까이 오렴” “아이 서방님 누가 엿들어요” “엿듣기는 누가 엿듣는단 말이냐, 어서 이리 오렴” 연심의 방안에서는 다정하게 소곤거리는 남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자꾸 이러시면… 과거 준비는 어찌하시려고”
인득과 연심은 빠르게 정이 들어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날을 정해 정을 나누고 나머지 날은 인득의 과거 준비로 보내기로 했다. 연심은 갖고 있는 패물들을 처분해서 인득의 살림살이를 도왔다, 지극한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기에 인득은 편히 글공부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며칠 후 인득은 봉산을 떠나 한양 땅에 도착했다. 나라에 경사가 있어서 과거가 시행되어 한양은 시골선비들로 가득했다. 시험장에 들어간 인득은 과거 제목을 받자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 연심이 덕분에 오늘 내가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꼭 급제해야 된다’ 입술을 꼭 다문 인득은 잠시 생각하다가 붓을 움직이고 시작했다.
급제자 명단을 적은 방이 붙자 인득은 감격에 눈시울을 적셨다. 드디어 급제한 것이다. 이제 몰락한 가문이란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연로한 노모를 고생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임금이 친히 내리는 어사화를 꽂은 인득은 은빛 말을 타고 봉산으로 금의환향 했다.
김 사또가 친히 영접을 나온 가운데 노모를 뵈온 인득은 곧 연심을 찾았다. “서방님” 연심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고운 얼굴 가득히 흰이슬을 뿌렸다. “연심이 이 모두가 그대 덕이오. 우리 오늘부터 헤어지지 맙시다”
벼슬길에 오른 인득은 기적에서 연심을 빼주고 임지로 부임하여 지방관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생출신인 연심을 정실로 맞아들일 수는 없는 법이라 인득은 양반가문의 규수를 맞아 혼례를 맺었다. 그래도 연심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첩실로 맞아들여 따로 살림을 차려주고 지극히 사랑했다.
지방관으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그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예조참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인득의 출세를 시기한 동료가 임금에게 거짓 밀고를 해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의금부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죄명은 엉뚱하게도 대역죄였다.
평생을 착하게 살아 온 인득의 성품으로서는 그런 짓은 생각도 못할 엄청난 것이었지만 간신들이 흉계를 써서 가두는 데야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억울하옵니다. 바다와 같은 상감의 은덕을 입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어찌 대역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박인득은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형을 집행하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소가 이끄는 함거에 실려 형장을 향해 가는 행렬 뒤에 흰 소복을 입고 정신없이 울며 따르는 한 여인이 있었다. “서방님 정말 가시나이까? 흐흑” 쉴 새 없이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는 연심의 얼굴은 몇 날 밤을 새웠는지 수척하고 파리했다.
사형수의 행렬이 형장에 도착하자 곧 집행이 시작되었다. ‘쿵쿵쿵…’ 북이 울리자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의 고함소리가 들리며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으악” 순간 처절한 비명이 들리고 하얀 그림자가 형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너무 순간적이고 갑작스러운 일이라 형리들이 만류할 틈이 없었다. “서방님” 여인의 목멘 울음소리가 넓은 하늘에 높다랗게 솟아올랐다. 그것은 애절한 울부짖음이었다. “아니 저건 웬 여인이냐? 당장 끌어 내거라” 놀란 형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용서하세요. 소첩도 서방님의 뒤를” 가느다란 신음소리는 끝을 맺지도 못하고 여인의 몸은 인득의 시신 위에 쓰러졌다. “저런 자결을 했구나. 죽었어” 사람들이 그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연심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첫정을 준 사나이의 뒤를 죽음으로 따라간 여인의 정절, 지아비가 왜 사형을 당해야 했는지 그런 것은 몰라도 좋았다. 다만 죽도록 사랑했기에 임을 쫓아 저승으로 영원히 떠나간 것이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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