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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 명종·인조 등의 실록

사관의 직필이 500년이라는 조선의 역사를 만들었다
언관(言官), 사관(史官)들의 직언과 용기가 역사를 기록
2022. 04.13(수) 10:17확대축소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지정서.
역사를 떠나 애국심을 구하는 것은 눈을 감고 앞을 보려는 것이며 다리를 자르고 달리고자 하는 것이다. 고로 역사는 모든 것을 미래까지도 가르쳐 준다.
나라의 공직자에 의해 국가 문서가 훼손되고 파기되었으며, 개인적인 용도에 의해 외부로 반출되었다는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 봐 있다. 나라의 기강이 이런 지경으로까지 무너진다면 미래를 가늠할 수 없게 된다.
공자는 말한다. “나라에 정도(正道)가 서 있을 때 녹을 받은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나라에 정도가 서 있지 않을 때 녹을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조선 왕조가 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단일왕조의 기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기강이 무너지지 않았고 젊은 언관(言官)들이나 사관(史官)들의 직언과 용기가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언과 용기를 편년체의 일기로 정리한 것이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선정 된 ‘조선왕조실록’이다. 직언과 직필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젊은 사관들은 여러 기사를 적으면서 ‘사신은 말한다.’는 비평기사를 동시에 적어서 등재된 기사에 공정성을 기했다.
사신은 논한다. 국사에 선정(善政)이 없고 교화가 밝혀지지 않아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포학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기름과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으며, 기한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연명하려고 도적이 되었다면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요 그들의 죄가 아니다.(명종 16년 10월 6일자 실록)
국사에 선정이 없는 것은 군왕의 실정에서 기인되고 가난한 백성이 연명하기 위해 도둑이 되었다면 그 책임이 임금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인조 때의 지평 정언벽의 직언상소는 군왕의 실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전하께서 구중궁궐 깊숙이 거쳐하면서 신하들을 자주 만나지 아니하면 사람들의 옳고 그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편전이나 와내(臥內)에서만 인접하여 치란의 도리에 대해 강론하고 정사의 득실에 대해 묻기도 하면서 말을 잘 들어보고 안색을 살펴 그 세태의 사정을 들어보고자 아니하십니까.(인조 26년 3월 4일자 실록-치자의 도리를 명쾌히 적고 있다.) 그러므로 임금은 사관들의 철저한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태종이 사냥에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낙상을 했다. 태종은 좌우를 둘러보며 “사관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는데 사관은 그 현장에 없었어도 태종의 말까지를 적어서 ‘실록’에 남겼다.
임금과 사관의 갈등도 있었다. 사관들은 ‘후세의 교훈을 위해 좀 더 자유로운 취재를 보장해 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왕실은 ‘임금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등의 논란과 갈등이 있었음(태종 1년 4월 29일자 실록)에 적혀있다.
국사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군왕의 게으름을 적어서 후세에 전하는 사관에게는 그 임무의 자유스러움 못지않게 혹독한 책임도 함께 따랐다. 사관들이 사초를 훔치거나 훼손한 경우나 사초의 내용을 발설한 경우에는 중형을 내려서 처단한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국가 문서의 취급을 얼마나 공정하고 엄격하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선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성찰을 요구한다.
사초는 모든 군신의 선악을 기록하여 후세에 가르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지극히 중요하여 다른 문서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보관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료 관원 중에 이 사실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자는 한 등급 강등, 친척과 친구의 청을 듣고 기록을 없애거나 훔친 자, 내용을 도려내거나 긁어 없애거나 먹으로 지우는 자, 사초의 내용을 외부사람에게 누설한 자는 참수해야 합니다.(세종 31년 3월 2일자 실록)
참수란 무엇인가. 목을 잘라서 죽이는 중형이다. 사료나 국가문서의 취급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 아니고 무엇인가.
조선의 사관은 그 직제의 편성이 매우 독특했다. 임금의 명을 대신 짓는 예문관의 관원 중에서도 하급인 봉교(정 7품) 2명, 대교(정 8품) 2명, 검열(정 9품) 4명 등 8명을 겸임사관으로 삼았다. 이들을 한림 8원이라고 한다. 또 임금의 옆에 지켜 앉아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모두 적는 10여 명의 전임사관도 있었다. 사관이 적어야 하는 내용은 대개가 직필을 요구한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타인과의 갈등요인을 적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사관이 쓴 사초를 기명으로 하느냐, 무기명으로 하느냐까지도 문제가 되곤 했다.
역사는 직필을 귀하게 여깁니다. 지금 춘추관의 사초를 거두어 놓고 각자가 이름을 사초에 쓰도록 했는데, 사초는 국사의 일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대부의 선악도 모두 기록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초에 이름을 쓰게 하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직필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예종 1년 4월 11일자 실록)
직필을 남기기 위한 노심초사를 읽을 수 있다. 국가 문서의 중요성을 이같이 하고 있었기에 ‘조선왕조실록’은 군왕의 게으름을 뉘우치게 하고 비정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역대의 임금들은 선대의 ‘실록’을 읽어보고 싶어 했다. 대개가 부왕의 과실이 적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대왕도 부왕 태종의 ‘실록’을 보고 싶어 했다. 태종의 집권과 골육상잔의 연속이었다 집권하고서도 네 사람의 처남들을 죽이고 사돈 세종의 장인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게했다. 게다가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한 뒤에 차례를 뛰어넘어 자신을 세자로 책봉했다. 이 문민독재의 행태를 사관들은 어떻게 적었는지가 궁금해서일 것이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실록을 읽고 싶다는 소회를 넌지시 물었다. “전대의 제왕들이 선왕의 ‘실록’을 보지 않은 사례가 없는 것 같다. 태종께서 태조실록을 보지 않으셨는데 하륜 등은 이를 보는 것이 옳다하고 변계량은 보지 않는 것이 옳다하여 태종께서는 변계량의 논의를 따랐다. 이에 춘추관에서 태종실록을 편찬했으니 내가 한 번 보려는데 어떤가” 이에 맹사성이 간곡하게 진언했다.
전하께서 만일 이를 보신다면 후세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 ‘실록’을 고칠 것이며 사관도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사실을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세종 13년 3월 20일자 실록-표현은 완곡해도 세종의 폐부를 찌르는 직언이 아닐 수 없다.)
살아있는 임금은 ‘왕조실록’을 볼 수 없다는 규범은 이렇게 정해졌고 그 후 5백여 년 동안 이것이 지켜졌다면 조선조의 신하(사관을 포함하여)들이 국가 문서를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를 알 수 있다.
조선왕조가 창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경연사 조박이 정종에게 올린 직언은 지금 되씹어 보아도 어색하지 않다. “군주가 두려워 할 것은 하늘과 역사입니다. 하늘이란 저 푸르고 높은 것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理)일 뿐이옵니다. 사관은 군주의 선악을 만세에 전하니 두렵지 않습니까.”(정종 원년 1월 7일자 실록)
사관들이 올린 사초가운데서 채택되지 않은 사초는 흐르는 물에 불려서 먹물은 씻어냈다. 이 과정을 세초라 한다. 첫째는 채택되지 않은 사초의 내용으로 인해 문벌이나 가문 간에 마찰이나 갈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재생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지혜롭고 아름다운 일일까.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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