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고물 철학
| 2021. 06.02(수) 10: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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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요즘 젊은이들의 삶은 버리면서 사는 문화같은데, 미국의 부자도 과거 우리나라 부자의 삶과 다르지가 않다. 케네디가(家)는 부호다. 한데도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는 길가에 버려진 폐물을 곧잘 주워들었다 한다. 미국에서는 날을 잡아 집에서 쓸모없게 된 중고품을 문전에 쌓아둔다. 그러면 구세군 차가 실어가거나 필요한 사람이 골라서 주워가곤 한다. 로버트 케네디의 부인도 망가져 버린 소형 냉장고를 길가에서 주워와 귀중한 서류의 상자와 모피 저장하는 옷장으로 쓰고 있다는 기록을 본 일이 있다. 델러노 루지벨트도 쓰레기통에 버려진 신문지를 보고는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성미라 한다. 물에 적신 신문지로 유리를 닦으면 인쇄잉크의 화학작용으로 어떤 스프레이 약액보다 유지성의 때가 잘 닦인다고 했다.
흔히들 폐물을 주워다 쓰는 것을 물자가 빈곤할때 몸에 밴 궁상스런 습성이니 근검절약을 장려하기 위한 구시대의 도덕이니 하지만, 루소는 아이들 교육에 가장 중요한 창조력·유추력·종합력·발상력·응용력 가운데 폐물을 줍게하여 이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조하여 쓰게 한다는 것은 발상력과 응용력을 발전시켜주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교육자원이라고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옛날 할머니들이 길 가다가 해어져 버려진 짚신짝이나 새끼토막을 궂이 손자에게 줍게하여 이를 낱낱이 풀어 솜처럼 부풀게 해서 개집에 넣어주게 했던 것이나, 새끼손가락만큼 짧아진 연필토막일랑 이웃 목수에게 갖다주게 했던 것들도 그 모두 교육적 저의가 내포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진다. 텔레비전 프로에서 추수 끝에 아이들로 하여금 이삭을 줍게하는 오스트리아 농촌 광경을 주의깊게 보았는데 그걸 보고 곡물이 소중해서 줍게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줄 안다. 소비가 미덕이요, 잘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요즈음 풍조에서 찡하게 와닿는 것이 있었다.
박물관에서 뉴턴이 만유인력의 이론을 추출해낸 수필원고를 본 일이 있는데, 시효가 지난 재산문서 뒷장이었다. 밀턴의 <실락원> 초고도 낡은 책의 뒷장 나부랭이로 지질이고 종이의 크기도 들쭉날쭉 일정치가 않았다. 루즈벨트도 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광고지 뒷장을 오려 메모지로 썼다. 2차 대전이 바로 낙지(落紙)에 의해 좌우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을 움직인 세계적 대발견이나 대작품이나 대사건들이 폐품인 낙지(落紙) 뒷장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기억해둘 만하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민중봉기를 야기시킨 3·1독립선언서도 바로 신문에 끼여든 낙지(落紙)의 뒷장을 엮어 초를 잡았고 기초자인 육당 최남선은 적어 남기고 있다. 물자빈곤이니 근검절약이니 하는 구도덕의 차원이 아닌, 새 차원에서 우리 주변을 새삼 뒤돌아 보았으면 한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