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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김천일 부인 양씨의 선견지명

노비들을 면천시킨 후 삶의 터전 마련해 주고
훗날 나라의 변을 대비 남편에게 강론회를 열도록해
임진년 김천일이 의병과 군량미를 마련 큰 공을 세우도록 함
2021. 03.30(화) 11:22확대축소
유학자 출신이자 임진왜란 최초 의병장으로서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의연하게 맞서 장렬히 전사한 의병장 문열공 김천일 선생을 기리는 추모제향 행사가 전남 나주 정렬사에서 거행되고 있다.
조선 선조(1567~1608)때 전남 나주에 사는 양씨 부인이 갑자기 “아버님, 이제 노비들이나 전답들은 모두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며느리의 말에 시아버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집 온 지 이제 겨우 3년째 이건만 이미 온 집안은 며느리 양씨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며느리의 살림솜씨가 워낙 뛰어난 데다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데도 빈틈이 없어 그동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하는 일을 예쁘게만 보아 왔었다. 헌데 이것이 어언 말인가? 손자를 귀엽다 귀엽다 하면 나중에 제 할아버지의 상투까지 쥐고 흔든다 하더니….
시아버지는 지금 그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무슨 말이냐? 네가 이 집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가산을 통째로 네게 넘기란 말이냐?” 옆에서 듣고 있던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고 나섰다. 양씨 부인은 시부모의 핀잔을 각오하고 있던 터라 별다른 내색없이 다시 시아버지를 졸랐다. “아버님, 지금까지 제가 허튼일 하는 것을 보셨는지요? 제가 아버님께 이러한 청을 드리는 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사옵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닌지라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언젠가 때가 되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저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양씨 부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허…!”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무언가 말 못할 깊은 속내가 있음을 짐작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전재산을 넘겨 달라는 데는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며느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믿고 그렇게 해달라며 졸라대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시아버지는 결국 며느리의 청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시아버지는 지금껏 한번도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항상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는 며느리를 믿기로 했다. 그가 며느리를 믿는 또 한가지 이유는 그녀의 부친 때문이었다.
그는 광주 어느 산골에서 세상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살고 있었지만 선견지명이 탁월했고 세상사 이치를 두루 섭렵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며느리기에 분명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리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아낸 양씨 부인은 곧 노비들을 마당으로 모이게 했다. “자, 이제부터 내가 자네들을 자유롭게 살게 해주겠네” 양씨 부인을 노비들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노비들이 놀라 되물었다. “말 그대로라네. 어떤가, 그리하겠는가?” “아이고, 아씨. 소인들이야 그리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사옵니다” 노비들은 감격하여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그럼 그리하도록 하게나. 우선은 당장 살 곳이 필요할 터이니, 내가 좋은 장소를 일러 주겠네. 이 소와 곡식들을 가지고 가서 이곳에 터전을 마련토록 하게나” 양씨 부인이 노비들에게 일러준 곳은 무주 구천동의 깊은 산속이었다. 비록 인적이 드문 산속이었지만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하여 농사를 짓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노비들은 양씨 부인이 준 소와 곡식들을 가지고 무주 구천동으로 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밭에 곡식을 심어 거둔다는 기쁨에 들떠 밤낮으로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고, 당장 이듬해부터 많은 양의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다. 양씨 부인은 틈틈이 사람을 보내어 노비들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노비들이 수확한 쌀을 보내려 하자 그것을 마다하고 대신 해마다 일정량의 곡식을 창고에 저장해 두도록 했다. 노비들을 자유의 몸으로 면천시킨 양씨 부인은 집안의 큰 재산들을 처분하여 돈으로 바꿔 따로 보관하고 남편 김천일과 함께 직접 논밭을 일구며 시부모를 봉양했다.
남편 김천일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았다. “부인, 그래도 양반 체통이 있지 어찌 그 많은 노비들을 다 내보내고 우리가 직접 이런 허드렛 일을 한단 말이요?” “서방님, 제가 이리 하는 것은 다 훗날을 예비하려는 것이옵니다” “훗날?” “예, 지금이야 별일이 없지만 조만간 나라에 큰 변이 생길 것이옵니다. 그때가 되면 서방님께서는 큰일을 하셔야 합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그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니 부디 저를 이해해 주세요” “어허…. 점점 모를 소리만 하시는 구려” 김천일은 아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더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서방님, 서방님께서는 이제부터 강론회를 자주 여셔서 양반이든 평민이든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록 하십시오” “강론회?” “예, 되도록 이 근방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양씨 부인은 다부지게 말했다.
“강론이라면 나야 즐겨하는 것이니 문제될 것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을 모으자면 대접하기도 수월찮을 것인데 그 일은 누가 한단 말이오?” “그것은 당연히 아녀자가 할 일이니 서방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고 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돈독이 다지는 데만 신경 쓰세요” 그날부터 김천일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아 강론회를 열었다. 때때로 양씨의 건의로 강론회에 모인 사람들과 산행을 하거나 씨름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자 갈수록 강론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갔다. 양씨는 강론이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놓아 곧잘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녀는 힘든 기색 한번 없이 언제나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접했다.
하루는 강론을 끝낸 김천일에게 양씨가 말했다. “서방님, 내일은 사람들에게 박을 하나씩 가져오라 하십시오” “박? 그것은 무엇에 쓰려고 그러시오?” 아내의 별스런 부탁에 김천일이 물었다. “호군들을 위해 쓸 것입니다” “호군? 갑자기 호군이라니? 장수들을 위해 박이 필요하단 말이오?” “예, 곧 요긴하게 쓰일 때가 올 것입니다” 며칠 후 양씨 부인은 김천일이 모아 온 박을 단단한 무쇠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검을 칠을 했다. 또한 양씨는 창고를 여러개 지어놓고 예전에 가산을 처분한 돈으로 창이나 칼들을 수시로 사들여 곳곳에 쌓아 놓았다. 이렇게 수년의 세월을 보내고 마침내 임진년(선조, 1592)이 되었을 때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 바다 건너 왜구들이 떼를 지어 침략해 온 것이다. 김천일은 아내의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방님, 이제 때가 왔습니다. 의병을 모집하여 전란에 휘말린 나라를 구하십시오!”
양씨와 김천일은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개시했다. 의병을 모으는 것은 오래 전부터 강론회로 인연을 맺어 놓은 이들이 지방 곳곳에 있었으므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집안에 있는 여러개의 창고에 쌓아두었던 무기는 의병들에게 지급하였고, 무주 구천동에 있는 노비들에게 저장해 두라고 한 곡식들은 군량미로 충당했다. 아내의 선견지명과 후원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의병 오천여 명을 모집한 김천일은 호남지역에서 왜군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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