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의 뒤안길> 호남지역 인물 소외
인조반정 뒤 호남인의 벼슬길 더 막혀
경기 충청도가 집권세력의 중심지 되다
| 2021. 03.18(목) 1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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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전라도는 임진왜란 때 국가에 공이 많았습니다. 양반으로 왕을 모신 자는 모두 전라도 사람들입니다. 또 호남이 차별한다고 시끄러운데 나라에서 사람대접하는 것이 그러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곳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대하여야 마땅할 듯합니다. 호남사람들을 거두어 쓰소서”
선조“그 동안 평안도 사람들을 거두어 쓰게 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였소. 생각건대 인사를 담당한 이조에서 겨를이 없어 그렇게 되었나 보오”(‘선조실록’ 29년)
이 대화를 보면 조일전쟁을 앞뒤로 하여 전라도 사람들의 관계진출이 막혔던 듯하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서인이 정권을 잡고 세력을 다지면서 호남사람의 벼슬길을 엄하게 막았다. 정권을 손아귀에 넣은 서인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조 난관자리를 독점하고 동인 계열이 주로 살고 있는 호남과 영남 인사들을 등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음직에서도 거의 제외시켰으며 사림의 천거도 고의적으로 방해를 놓았다. 영조는 이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호남인사의 등용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746년 호남의 인재를 찾아 쓰라는 영조의 명이 거듭 내리자, 수찬 이이장이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일찍이 호남의 어사가 되어 이이신 등 다섯 사람을 천거하였습니다. 갑인년(영조 10년)에 발탁하여 쓰라는 분부가 있었으나 아직도 한 사람도 임명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중 세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비록 어사의 천거가 있다 할지라도 한갓 형식을 갖추는 데 그칠 뿐입니다”(‘영조실록’ 22년) 이 말을 듣고 영조는 이조의 관리를 문책할 듯 하였으나 끝내 미온적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권신들의 방해도 심했거니와 집권세력의 비위를 크게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정에서 호남을 얼마나 푸대접을 하였는지에 대해 호남에 양전사로 나갔던 원경하의 상소가 잘 말해준다.
“신이 토지 개량의 임무 때문에 나주-영암 사이를 왕래하다 보니 마을들이 여기저기 잇달아 있었습니다. 충신각, 효자각이 보여 말을 멈추고 물어 보고, 돌아보니 충신의 유택과 효자의 정려가 아닌 듯 황폐해 있었습니다. 그 뒤 예절을 알아보니 모두 퇴락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되었고 옛 가풍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호남은 예부터 생활이 유족한 땅으로 일컬어졌는데 수십 년 이래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주려서 능히 고기 먹고 쌀밥 먹는 낙을 누리지 못하여 떠돌이로 흩어져 살게 되었고 따라서 높은 정자와 큰 누대가 수리되지 않았습니다. 옛 사람이 정원이 손질되고 퇴락했나를 보고 낙양의 성쇠를 알았다는데 신 또한 정자가 쓰러져 가는 것을 보고 호남의 황폐함을 애석히 여깁니다. 아마 기대승·김인후의 깊은 학문과 고경명·김천일의 충성과 절개, 이후백·박상의 문장과 명망, 정충신의 공업과 김덕령의 용기, 임형수·임제의 호기 이 모두가 호남 사람들인데 인물의 성쇠가 고금과 같지 않으니 이것이 신이 배회하면서 감회를 자아내는 바요, 훌륭한 임금을 모시는 나라에서 길이 탄식할 일입니다. 이곳 선비들은 독서와 강의로 자기를 고요히 지키고 혹 늙어서도 세상에 나서는 것을 구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만약 조정에서 발탁하여 등용한다면 격동하여 일어날 것입니다”(‘영조실로’ 23년)
우리는 이 소문에서 몇 가지 구체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국가정책으로 되어 있는 충신, 효자 및 그 자손에 대한 특혜가 호남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거나 소홀하였다는 것이다. 충신 효자에게는 일정한 벼슬이나 포상을 내리고 죽으면 정려각을 세워 기리고 그 후손은 계속 중앙이나 지방 관아의 보살핌을 받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호남에서는 이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둘째, 은거해 학문을 닦고 있는 사람을 천거할 때 호남지방 인사는 거의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송시열도 이 천거제도에 의해 발탁되었다. 그런데 호남인사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인조반정 이후에는 중앙의 현관은 물론 지방의 수령까지도 호남지방 인사의 등용이 드물었다.
셋째, 벼슬길이 막힌 호남지방 선비들은 신세를 한탄하며 학문과 예술에 몰두해 전라도는 예술의 고향으로 일컬어졌다. 이들은 농경지역의 유족한 생활에 힘입어 풍류를 즐기면서 현실의 비리를 외면하고 지냈다. 허균은 ‘성옹지소록’에서 “호남사람은 기질이 강하다. 그들은 생활이 넉넉하여 남한테 굽히지 않으려는 기질이 있다”고 갈파하였다.
경기지방은 왕도가 된 이후 조선조의 정치 문화를 총괄하고 각도의 벼슬아치나 장사꾼이 이주하여 살았기 때문에 지역적인 특성이라든가 지역적인 파벌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향 사람을 깔보는 오만한 습성이 베어 있었다.
충청도는 인조반정이후 지역적인 파벌이 삼화, 확산되어 갈 때 집권세력의 중심이 배출되어 ‘양반의 고장’이라고 자처하였다. 당쟁을 조장한 처지에 터무니없는 자부심이었다.
영남은 어느 지역보다 특수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비록 나라의 동남쪽에 편재해 있으나 신라 때부터 한반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고려 때 약간의 소외는 당했으나 호남과 더불어 양대 지역으로 중시되었고 인물의 배출 또한 조선에서 으뜸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해동유학의 연원인 정몽주를 비롯하여 김종직, 이황, 조식이 일어나 그 학문에서 무수한 유학자를 배출해 공자 맹자가 난 곳과 다름없다 하여 ‘주로지향’이라 일컬어져왔다.
유교문화가 중심이던 조선에서 학자, 충신, 효자, 열녀가 많이 난 이 지방을 풍속과 교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았다. 그러나 당쟁이 고개를 들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곳의 유자 또는 사족인 동인에 가담하였고 이황의 제자를 특히 유성룡 문하가 남인계열이 되자 이곳 선비들은 서인 또는 노론과 맞서게 되었다. 인조반정 뒤 서인이 집권하자 이곳에서 과거 합격자를 많이 내면서도 관계에 발을 붙이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곳의 일부 노론을 제외하고는 조선조 후기에 와서 고관직을 역임한 사람을 찾은 수가 없다. 거기에다가 영남의 콧대 센 선비들을 누르기 위하여 노론은 언제나 자기 계열 중에서도 학식이 있으면서 기질이 드센 인물을 이곳 감사나 수령으로 보내어 이들을 견제하였다. 이렇듯 외부의 제약에 눌리자 이곳 선비들은 서원을 중심으로 입씨름을 벌이고 수령 이하 관리들에 맞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 날을 지새웠다.
양반이니 가문이니를 내세우며 양민을 억누르고 배타적인 경향을 띠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보수적인 기질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영남이 조선조 중기까지 별로지역 차별을 받지 않았고 강릉은 영남의 안동과 함께 인물이 많이 난다고 자랑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조반정 후부터 이곳 사람들은 관계에 진출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곳의 벼슬할 만한 문벌 대부분이 남인계열이고 일부는 소론이었기 때문이다. 원주의 한백겸의 후손인 청주 한씨와 정시한의 후손이 나주 정씨, 횡성의 정여영의 후손인 초계 정씨가 모두 남인이고 강릉의 최석함의 후손인 전주 최씨는 소론이었다. 그리하여 “그 반을 버린다”고 지적할 만큼 호남지역도 소외를 당하고 있었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