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워야 할 지식유희
| 2021. 03.11(목) 10: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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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옛 선비는 웃고 지나칠 일도 눈 내리는 겨울날 뜻이 맞는 선비끼리 사랑에 모이면 누군가가 ‘꼴불견’에 대해 일곱 글자의 글을 짓자고 제의를 한다. 그러면 번갈아 글을 지어내는데, ‘꽃을 보고 눈물 흘리는 꼴불견’, ‘이끼 위에 돗자리 펴는 꼴불견’, ‘꽃가지에 속옷 말리는 꼴불견’, ‘달 아래 불 잡고 있는 꼴불견’, ‘기생 옆에서 국사 논하는 꼴불견’… 하며 즐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경과 싸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 지식 유희가 꽤나 성행했던 것 같다.
최남선, 정인보 같은 우리역사에 조예가 깊은 분끼리 북한산계곡에 발을 담그고 조선왕조 5백년 동안 각계각층의 대표격 인물을 각자 투표하여 다수결로 정하는 유희를 했다. 이를테면 ‘절(節)’ 성삼문, ‘풍류(風流)’는 임백호, ‘오입장이’는 천홍철, ‘방달(放達)’은 정수동, ‘주(酒)’는 우육불, ‘미인(美人)’은 자동선, ‘부(富)’는 변승업, ‘도(盜)’는 일지매 하는 식으로. 오늘날 그 선비들이 있다면 마크램지어는 일본 매춘부의 아들이라 그는 준 일본인이라고 멋지게 이름을 붙여줬을 것. 그 증거로 그때그때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 해놓고 있는데, 내각(內閣)을 구성하는 조각유희는 전통있는 지식 유희다.
그래서 덕망이 있던 임금은 승지들에게 밀지를 내려 북촌의 아무개 집 사랑에서, 또는 남촌의 아무개 집 사랑에서 ‘조각 유희’ 한 것을 염탐해 갖고 오라시켜 사람을 쓰는데 참고할 정도였다. 하니 유희치고는 퍽 파워가 있는 유희였다 할 수 있다.
재미삼아 육당 최남선이 남긴 조각 유희를 보면 수상에는 농부로서 천거되어 국상(國相) 13년 만에 태평성세를 이룩한 고구려의 을파소, 육군 대신에는 을지문덕, 해군 대신에는 이순신, 학부 대신에는 설총 등으로 조각을 하고 있다. 참모총장에는 강감찬, 군단장에는 김유신을, 함대사령관에는 신라의 장보고, 검찰총장에는 조광조, 국립대학 총장에는 이황, 정몽주는 전권대사로 기용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요즈음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다. 뽑아놓은 것을 보면 안배가 너무나 잘 돼 있다. 의장은 이이요, 백제 대표는 성충, 고려 대표는 이색, 조선 대표는 황희… 하는 식으로 각국 대표가 하나씩 선발되고, 노론 대표에 송시열, 남인 대표에 허목… 하는 식으로 사색당 대표가 고루 선출되었다.
그리고 천민 대표에 서기, 중인 대표에 홍순언, 서족 대표에 송익필, 아전 대표에 엄흥도까지 국회에 진출시키는데 소홀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빠짐없이 민의를 수렴한 것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 못한 요즈음 국회가 배울 것이 적지 않은 그런 지식 유희가 아닐 수 없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