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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권력과 미국의 권력
2020. 12.29(화) 14:16확대축소
고운석 주필
권력은 평등을 용납하지 않으며 아첨을 위해 우정을 버린다. 뿐만 아니라 권력 투쟁에는 최고의 승리자와 멸망 사이의 중간과정이 없다. 하지만 해는 중천에 뜨면 그 순간부터 기운다. 함에도 권력자나 윗사람 치고 비판의 목소리를 고깝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고언 (苦言)에 귀를 닫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제도적으로 차단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광군(狂君)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연산군은 언로의 통제가 유독 심했다. 연산군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사를 파악하기 위해 주요 사안에서 재상들이 제시한 의견을 초록으로 따로 작성해 보고토록 했다. 입관한 내관과 승지, 사관의 이름을 모두 적도록해 발언자를 색출할 근거를 마련했다.
그는 "나라가 평안한데도 대간(감찰관 및 간관)이 상소를 자주 하는 것을 매우 옳지못하다"며 그래도 아뢸일이 있으면 연유와 성명을 미리 밝히고, 입궐한 횟수까지 보고토록 했다. 압권은 '신언패(愼言牌) 였다. "입은 화(禍)를 부르는 문이 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편안할 것이다"라는 문구의 패를 관원들에게 채우며 입을 틀어막았다. 최근 때아니게 신언패의 위압적인 발언 통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검찰 내부망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검찰개혁의 핵심이 크게 훼손됐 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평검사에 대해 "커밍아웃 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이라고 공개 저격하고 나선 것이다.
조직의 인사권자가 내부 비판자를 반(反)개혁 세력으로 몰고, 불만의 목소리를 손수 찍어 누르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과거 미국도 우리 한국과 좀 다르긴 해도 권력의 세계는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공직이 집권세력 논공행상의 제물이 되는 '엽관제'는 미국의 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잭슨이 도입했다. '전리품은 승자에 귀속된다'는 표현대로 전쟁터에서 전리품을 노락질하듯 선거에 승리한 측이 국가의 공직을 나눠가진 것이다. 변방이었던 서부 개척자의 변호사 출신인 잭슨은 1829 년 대통령 취임 당시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국민의 통치를 확립하겠다"며 개혁을 표방했다. 미국금융계와 정부주요직책을 '동부출신 귀족'이 독점하고 있다고 본 그는 "한 사람이 공직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국가 주요 직책의 로테이션을 주장했다.
그결과, 잭슨 대통령 임기 첫 해에만 919개의 주요 공직에서 책임자가 바뀌었다. 대통령 임기동안 전체 공직의 20%가량이 선거에서 잭슨 편에 섰던 패거리로 채워졌다. 당시의 대표적인 행정조직이었던 우체국은 한해동안 423개 지소의 우체국장이 교체됐다. 이런 노골적인 공직 사냥을 두고 잭슨 지지파는 '공직의 민주화'라고 미화했다. 하지만 정작 정권 내에선 뉴욕출신의 '반 뷰렌파'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부통령이었던 '칼훈파'가 나뉘어 자리다툼을 이어갔다.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요즘 한국에서는 앤드루 잭슨 행정부도 울고갈 법한 대대적인 자리 '나눠먹기' 경쟁이 노골화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전정부도 그랬지만, 주요공직과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손해보험협회,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같은 주요금융단체 수징 자리를 둘러싸고 '낙하산' 논란이 불붙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자리까지로 착지 구역이 넓어졌지만 '낙하산'을 손에 쥐기 위한 경쟁은 더 격화됐다. 과거에 소위 '관파아(관료+마피아)'가 주로 노렸던 '나와바리(영역)'에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가세하면서 이전투구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주요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의 장 자리가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의 노후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실무경력이나 전문성과 관계없이 위에서 떨어진다는 의미가 함축된 '낙하산'이라는 단어, 이탈리아 범죄집단을 지칭하는 마피아와의 합성어인 '관피아', '정피아'라는 용어 속에 이미 낯뜨거운 자리 나눠 먹기에 대한 시민사회의 준엄한 평가가 담겨있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호시탐탐 한자리 꿰차는 데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후안무치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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