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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의 뒤안길- 문벌가야 출세했던 조선?

실력과 덕망은 소용 없고 권력 있으면 벼슬
세도정치 주도한 문중 자제들 많은 음직 받아
2020. 08.05(수) 13:18확대축소
북한 개성직할시 선적리 산 중턱에 있는 고려 11대 문종(文宗)의 무덤인 경릉(景陵) 서쪽 측면 모습.
문벌가에다 권력이 있으면 경쟁이 치열한 벼슬길도 비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 전 모 장관의 딸처럼 조선시대 이야기인데, 가장 흔한 것이 과거에서 부정을 저지른 방법을 썼다. 첫째, 응시자가 시관을 매수해 시험 제목을 미리 알아내 그 제목에 따라 집중적으로 공부를 한다. 둘째, 대필을 시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과거를 보면서 부정행위자가 미리 내통한 자의 글을 베끼고, 그 내통한 자는 시험지를 내지 않는다. 셋째, 시관이 특정한 응시자에게 점수를 후히 주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응시자의 성명이 안 보이도록 시험지를 접어서 내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합격을 취소하거나 다음의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내렸다.
다음에는 음직을 받기 위해 조상의 공로를 조작, 왜곡, 과장하는 경우다. 평범한 벼슬아치에 지나지 않은 조상에 대해 국가와 왕실에 큰 공로가 있는양 기록하여 당대 및 자손의 영광을 보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명문가로 일컬어지는 문벌, 곧 풍양 조씨 , 안동 김씨, 여흥 민씨 등 세도정치를 주도한 문중의 자제들은 특히 많은 음직을 받았다. 천거를 위해 자기네 파당끼리 서로 떠받드는 풍조도 생겨났다. 우리 스승의 도학이 더 높다느니, 우리 조상의 도학이 더 높다느니 따위로 다툼질을 하며 온갖 책략을 동원했다. 권상하는 노론의 거두 송시열의 제자이다.
송시열은 숙종에게 권상하를 불러 벼슬을 주라고 권하고, 권상하에게는 벼슬을 사양하라고 일러 덕망을 조작하였다. 사림으로 천거되어 부름을 받으면 사양하는 체하면서 사직상소를 올리다가 계속 더 높은 벼슬이 주어지면 못 이기는 체하고 나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벼슬과 도학의 명성은 문벌을 빛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는데 조선 후기에 와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이와같은 폐단에 대해 이익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문벌을 숭상하는 폐단이 지금과 같이 심한 적은 없었다. 할아비가 관직에 있는 것은 아비가 관직에 있는 것만 못하고 대부의 아들은 정승의 아들만 못하다.
예전에는 족성(族姓)을 숭상하지 않아 각각 재주와 학문으로써 벼슬길에 나아가 미천한 출신으로도 현관이 된 적이 있다. 근래의 대간은 아는 것이 없어서 떠들썩하게 남을 공격하면서 문벌이 한미한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재주와 덕망이 어떠한지는 따져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겠다. 맑은 조정의 벼슬자리는 벌열의 자체만을 위해 만들어 두었던 것인가?(「성호사설」 인사문) 이 지적대로 능력 위주가 아닌 문중을 배경으로 한 '줄'이 판을 쳤다. 그러면 어떤 가문이 빛나는 문벌을 자랑하였던가? 벼슬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벼슬이라도 문반이 많아야 하고 문반 중에서도 문형(文衡)이 많이 나야 하고, 그 후손들 중에서 역적이니 간신 따위로 몰리는 일이 없어야 더욱 문벌이 빛나게 된다. 이긍익은 부자, 형제 및 3대에 걸쳐 정승 벼슬을 한 집안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부자 정승으로 황희·황수신, 정태화·정재승, 민정중·민진장, 김수항·김창집, 조문명·조재호 등 열두차례, 3대 정승으로는 서종태·서명균·서극수 등 세 차례, 형제 정승으로는 김상용·김상헌, 정태화·정치화, 김수홍·김수항, 민암·민희, 최석정·최석항, 이건명·이관명, 조문명·조현명, 홍봉한·홍인한 등 열여섯 차례이다.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이들은 거의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 그리고 일부 척족이다. 우리나라의 이름있는 문벌가는 대개 이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전주 이씨, 광산 김씨, 연안 이씨, 파평 윤씨, 풍산 홍씨, 광주 이씨, 안동 김씨, 양천 허씨, 동래 정씨, 달성 서씨, 여흥 민씨 등이다.
문형을 담당하는 영광스러운 벼슬로 꼽는 대제학을 많이 배출한 집안으로는 전주 이씨 7명, 연안 이씨 7명, 광산 김씨 7명, 달성 서씨 6명인데 이들 집안은 모두 3대 대제학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전주 이씨의 이민서·이휘지, 연안 이씨의 이정구·이명환·이일상, 광산 김씨의 김만기·김진규·김양택, 달성 서씨의 서유신·서영보·서기순 등이다. 안동 김씨의 김수항과 김창집을 비롯한 5수(壽) 6창(昌)과 연안 이씨의 이단상을 비롯한 8상(相)과 광산 김씨의 김춘택을 비롯한 8택(澤)이 형제간으로서 관명과 문명을 날려 명문으로 꼽혔다. 명문가 가운데서 삼한(三韓)의 갑족(甲族)으로 연안 이씨와 광산 김씨를 꼽는다.
월사공파라 불리는 이정구의 자손과 사계파라 불리는 김장의 자손이다. 이 두 가족이 첫손가락에 꼽히는 문벌가인 까닭은 정승, 대제학, 문과 급제자가 한 파에서 가장 많이 배출된데다 척족이나 세도를 등에 업고 벼슬을 차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사람의 특출한 인물을 배출했다고 하여 빛나는 문벌가로 꼽히는 것은 아니다. 조광조, 이항, 이이 및 송시열 가문을 문벌가로 치지는 않는다. 문벌가는 몇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철저히 권력지향적이고, 둘째는 개혁을 외면한 보수성향을 띠며, 셋째는 실리적으로 영달을 추구한다. 삼한갑족의 첫손가락에 꼽히는 연안 이씨의 경우가 그 좋은 본보기이다. 이씨족은 상신 8명, 대제학 7명, 청백리 6명, 문과 급제자 250명을 배출하였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안목에서 볼 때 이 들 가운데 뛰어난 학자나 정치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순에 찬 현실개혁을 제창한 개혁사상가도 없다. 반면에 언제나 현실 정치정세에 민감하여 권세있는 당색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킨다. 적대 당색도 부드럽고 온건하게 대함으로써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척족이 되거나 세도를 잡고서 지탄을 받을만한 권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연안 이씨 문중에서는 역신이나 탐관이 나지 않았고, 조선의 문존무비 정책에 충실하여 훌륭한 무신을 한 명도 배출하지 않았다. 문벌가는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하여 모험을 하지 않았다.
19세기 항일 의병 투쟁의 과정에서도 그러한 단적으로 드러난다. 충청도를 지나던 황해도 의병들은 분노를 터뜨리며 문벌사족을 비꼬았다. "송(宋)가는 갓을 벗겨 목(木)가로 만들고 윤(尹)가는 꼬리를 잘라 축(丑, 소)가로 만들고 김(金)가는 두 불알을 잘라 전(全)가로 만들어라" 여기에서 말하는 송가는 송시열의 자손인 회덕이 송씨이고, 윤가는 윤증의 자손인 노성의 윤씨이고, 김가는 김장생 자손인 연산의 김씨이다.
어찌 이곳의 세 문벌가만이 그랬으랴. 유명한 양반 또는 문벌가는 특권계급이라는 긍지 속에서 문중의 명예를 무엇보다도 중시했다. 그들은 종법(宗法)준수, 가례(家禮)보급, 가묘(家廟)장려를 문중을 존속시키는 토대로 여겼다. 종법이란 종중 특유의 규범이다. 종가를 중시한다든가, 시제 등 종중행사에 참여한다든가, 장유존비의 질서를 지킨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가례란 제사의식 등 관혼상제를 절도있게 거행하는 것이다.
가묘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이 종손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아울러 학식과 덕망 또는 항렬이 높은 문장(門長)에 의해 문중의 질서가 유지된다. 문중에는 위토라는 일정한 재산이 있다. 이 재산은 문중 공동소유이고 그 수익은 시제 등의 경비는 물론 효자, 열녀의 비석과 충신각 등을 짓는 재원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를 잘 지켜 나가야 양반이고 명문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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