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舊正) 호칭
| 2020. 01.06(월) 13: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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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말은 쥐가 듣고 밤 말은 새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고, 이솝우화 '서울쥐와 시골쥐'도 있는 등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허나 육십갑자의 한 해를 우리 조상들은 음력으로 생활해 왔다. 이 때문에 1980년대에도, 공휴일로 하기로 한 구정(舊正)의 호칭을 두고 당국은 무척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로부터 불려왔던 설 또는 설날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여론이 많았다는데, 그 타당성을 가리기 위해서는 그 말의 어원을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옛날부터 신년 정초를 설이라 불러왔고 한문으로는 근신한다는 뜻인 '신일(愼日)' 또는 애태울 달(?), 근심할 도(?)를 모은 '달도일(??日)'로 문헌에 적고 있다. 왜 축복하고 기뻐해야 할 정초가 그렇게 근심하고 애태우며 몸을 사려야 하는 날이 됐을까.
삼국시대부터 정월의 첫 쥐(子)날, 돼지(亥)날 그리고 까마귀날(15일)에는 백사(百事)를 근신하는 풍속이 있었으며, 몸을 사린다 하여 정초를 통틀어 사리는 날, 곧 설날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까마귀나 쥐나 멧돼지는 농작물을 해치는 짐승으로 농경민족이 가장 두려워했던 금기동물이기 때문이다. 농경민족에게 있어 정초의 가장 큰 관심은 그해 농사의 풍흉이었으며, 정초의 풍년을 비는 절차에서 이같은 금기와 근신하는 민족이 생겨났음직하다.
풍년을 기원하고 풍년의 저해요소를 금기하는 뜻만 살리면 어원상으로 보아 구정을 설날이라 호칭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본다. 하지만 말이란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 어원이 갖는 뜻이 달라지게 마련이며, '설'이라는 말도 거기에서 금기.근신의 뜻은 사라지고 정초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 말이 돼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구정을 설날이라 호칭한다면 설날로 호칭해 내려온 신정(新正)과 혼동이 생긴다.
묵은 설이라 호칭하면 구정이 되어 꺼림칙하고, 작은 설이라 하면 이미 동지가 작은 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역시 모순된다. 그래서 '민속의 날'로 정했다는데, 물론 많은 민속이 이날에 집약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타의 명절에도 많은 민속이 산재돼 있어 명절마다 민속의 날인데 굳이 이날에 국한해 그런 이름을 붙여야 하는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이름을 붙일 아무런 근거나 전통이나 또 의미도 없고 비전도 없는 궁여지책의 호칭이다.
세배는 신정, 차례는 구정으로 분담하여 '조상(祖上)의 날'로 하는 것이나, 또 어버이날도 있으니 '할아버이의 날'로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통 정신문화의 부활이라는 차원에서 비전이라도 있다. 설날에서 정초란 뜻을 증발시키고도 존립시킬 가장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앞서 '설'의 어원과도 밀접한 기풍요소다. 아무튼 1월1일 '신정'이 지나고 우리 고유명절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좋은 꿈 거듭거듭 꾸시옵소서.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