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420채 값 주고 지킨 청자
| 2019. 03.04(월) 13:09 |   |
|
|
1936년 일제 경매회사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일본 거상 야마니카상회를 물리치고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1만4580원에 낙찰받았다. 능숙한 운필로 국화와 난초, 곤충을 그린 18세기 조선 백자로, 나중에 국보 제294호로 지정됐다. 전시장을 지키는 그의 손자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할아버지는 막대한 재산 중 98%를 문화재 구입과 보성학교 운영에 쓰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간송은 문화재뿐만 아니라 민족학교도 지켜냈다.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지키고자 1940년 6월 재정난에 허덕이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했다. 이 학교 교사와 재학생들이 1919년 3.1운동을 주동했다. 학교 재단인 천도교 인사 15명이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됐고, 보상학교 교장 최린이 핵심 주동인물이다. 5회 졸업생 송계백, 6회 졸업생 김도연은 일본에서 2.8독립선언을 주동해 3.1운동에 불을 붙였다. 3월 1일 아침부터 교감 김일과 재학생들이 힘을 모아 조선독립신문을 제작해 배포했다. 일제에 체포되고 재판을 받은 학생만도 20여명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이 마련한 ‘3.1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2019. 1. 4~3. 31)에서 간송이 직접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볼 수 있다고도 한다. 1946년 보성학교 교장직을 맡았던 그는 3월 1일 졸업식 때 학생들에게 낭독해주기 위해 이 독립선언서를 썼다고 한다. 한만호 간송미술관 기획실장은 “10대 시절 3.1운동을 목격한 간송은 20대 중반부터 문화재를 수집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유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셨다”고 말한다. 이 전시장에는 이 외에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일제에 대항해 보호한 국보 6점, 보물 8점, 가상현실(VR)로 디지털화된 유물 15점 등이 선보이고 있다. 1933년 친일파 송병준 집에서 한줌의 재로 사라질 뻔한 겸재 정선의 화첩인 보물 제1949호 ‘해악전신첩’도 진열돼 있다. 골동상인 장형수가 송병준 집 머슴이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넣으려던 것을 사서 간송에게 팔았다. 진경산수화풍이 잘 드러난 ‘단발령망금강산’ ‘금강내산’, 원숙한 필묵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 ‘불정대’ 등을 볼 수 있다. 간송이 일본의 문화재 반출구였던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구한 대표적 유물인 ‘예서대련’(보물 제1978호) ‘침계’(보물 제1980호) 등 14점도 감상할 수 있다.
이 전시는 지난 5년간 진행해온 간송미술문화재단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 마지막이다. 다만, 이 건물 지하에 위치한 유물관리실을 통한 공간 협업은 계속된다.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품 200여 점이 보존처리 돼 있다. 대신 5년만에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문을 열어 이르면 올해 가을부터 전시를 이어나갈 계획이란다. 관람자들은 여기서 기와집 420채 값을 주고 간송이 지킨 청자에 놀랄 것이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 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