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의사생(取義舍生)의 위대한 구국투쟁”

2018. 08.13(월) 11:55

꼭 110년 전인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두에 승용차 한 대가 섰다. 중절모를 쓴 미국인 신사 한 명이 차에서 내렸다. 돌연 한 동양인이 그에게 다가서더니 권총을 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불발이었다. 그러자 동양인은 총열을 잡고 총두로 미국인의 얼굴을 세게 친 뒤 뒤엉켜 격투를 벌였다. 그 순간, 미국인의 뒤편에서 또 다른 동양인이 권총을 뽑아 세 번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은 미국인과 싸우던 동양인의 어깨에 잘못 맞았지만, 나머지 두 발은 미국인의 등과 허리를 관통했다. 미국인은 이틀 뒤에 숨졌다. 미국인은 대한제국의 외교고문 스티븐스(D. W. Stevens)였고, 앞서 나타난 동양인은 한국인 전명운(田明雲·1884~1947), 저격에 성공한 사람은 장인환(張仁煥·1876~1930)이었다. 일제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던 시기, 스티븐슨은 을사늑약의 막후 역할을 맡는 등 사실상 일본의 공작원이자 앞잡이로 활동했다. 그는 미국에서 언론 회견을 통해 “일본의 통치만이 한국을 발전시킨다” “이완용 같은 충신과 이토 히로부미 같은 통감이 있는 것은 한국에 큰 행복이다”고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와이 이민 1세대인 장인환·전명운은 샌프란시스코에 이주한 뒤 막노동으로 일하다가 미주에서 결성된 항일 단체인 대동보국회와 공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1908년 3월 스티븐스가 통감부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일제의 침략을 왜곡 선전하자 이곳의 한인들은 분기탱천했다. 마침내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두로 나온 순간, 두 명의 의사(義士)는 거사를 벌였다. 서로 의논하지 않고 각자 나선 단독 거사였다. 그것은 1년 뒤에 일어나게 될 안중근 의거의 서곡과도 같았다. ‘애국심에 의한 사건’임을 인정한 미국 법원은 전명운에게 무죄를, 장인환에게는 25년 형을 선고했다. 장인환은 1919년 가석방됐다.
10년 전, 당시 국가보훈처(처장 김양)는 ‘해외의 한국 독립운동 사료’ 총서의 하나로〈장인환·전명운의 샌프란시스코 의거 자료집> 전 2권을 출간했다. 1권은 샌프란시스코 한인공동회 자료와 미국 법원·형무소 관련 자료, 국내외 언론보도 자료를 수록했고, 2권은 일본측 문서를 수록했다. 특히 두 사람의 영문 수감 영장과 스티븐스의 사망진단서는 2008년 처음 발굴된 자료다. 자료 해제를 맡은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는 “두 사람의 의거는 항일독립운동사의 의열 투쟁을 선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으며, 절망적으로 보이는 민족 수난의 비극을 극복할 방법이 없을 때 취의사생(取義舍生·목숨을 내던져 의로움을 얻음)의 정신으로 일으킨 위대한 구국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고운석 주필 cws2344@hanmail.net        고운석 주필의 다른 기사 보기